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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seems I hardly had to steer, my course was planned
And destiny guides us all and by its will, we rise and fall
But only for a moment of time enough to catch our breath again"
광활한 설원위에서 시합중인 스키 선수의 마음을 담은 듯한 노래 'Ever since the world began' 의 일부입니다.
무엇이 서울대학교 스키부원들의 숨을 겨울의 대관령에서 50년 넘게 이어오게하고 있는지 동문들께서 서울대 스키부 50년사에 쓴 글과 사진을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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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변화 - 리프트의 시대가 열리다
한국의 스키 환경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는데, 바로 1975년 국내 최초의 현대식 스키장 용평이 발왕산 기슭에 개장한 것이었다. 스키어들에게는 ‘꿈의 리프트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지르메, 제3슬로프, 차항슬로프 등이 주된 훈련 장소였지만, 용평스키장의 개장과 더불어 이 슬로프들은 스키를 짊어지고 슬로프 정상을 향해 오르던 수많은 스키어들의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1982년에는 양지 파인리조트스키장과 천마산스키장이 개장했고, 1984년에는 진부령 알프스 스키장이, 1985년에는 베어스타운이 문을 열었다. 더욱이 매년 스키 동호인이 20% 이상 급성장하면서 스키장은 점차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1989년에는 스키인구가 100만 여명으로 추정될 정도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1990년, 당시 최고의 슬로프면과 리프트를 보유한 무주리조트가 문을 열면서 스키가 전 국민의 운동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대 스키부의 숙제: 신입 부원 모집
조건은 분명 달라지고 있었다. 리프트가 생기고, 자연설이 아닌 인공설로 스키를 탈 수 있는 스키장들이 생기면서 스키를 타는 사람들도 급속히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스키를 둘러싼 제반 조건들이 더욱 세련되고 현대화될수록 서울대 스키부는 조금씩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스키가 더 이상 소수의 몇몇이 누리는 스포츠가 아니게 되고 점차 대중화되면서 서울대 스키부의 희소성이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는 일반 대학생들이 평소 접하기 어려운 스키를 스키부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스키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게 된 것이었다.
눈밭에서 두 달 동안 훈련을 하고 나면 신입생이 들어오는 3월에는 모두들 검게 그을린 얼굴로 신입생을 맞이해야 한다. 게다가 의과대학과 치과대학 학생들이 주축으로 이루어진 서울대 스키부의 특성에 따라 1970~1990년대 당시 스키부의 부실은 연건캠퍼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신입생들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연건캠퍼스에 매료되기 일쑤였지만, 실제 스키부실에 가서는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어두컴컴한 스키부실로 찾아온 신입생들에게는 “100미터는 얼마에 뛰냐?”, “술은 좀 마시냐?”, “누나는 있냐?”는 등의 질문이 퉁명스럽게 쏟아졌고, 신입생 환영회는 늘상 엄청난 양의 술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마치 불량서클 처럼 보인다”는 신입생들의 평가를 받곤 했다. 그러나 이는 고된 훈련과 엄격한 합숙을 견디지 못해 뛰쳐나가는 부원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에 초반부터 힘을 주어 스키부 생활의 긴장을 부각시킴으로써 옥석을 가려 내려는 부원들의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연건캠퍼스에 있던 스키 부실조차도 의치학전문대학원의 도입으로 의치대학생 부원이 점점 없어지면서 함께 사라지게 된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2002년 MBC 시선집중에 소개된 ...40주년을 앞둔 01-02년 합숙때 yb 부원들이 mbc 시선집중에 소개된 동영상입니다.cafe.naver.com
결과적으로 스키의 대중화는 스키부원의 축소로 이어졌고, 현재까지도 이는 스키부가 해결해야 하는 숙제로 남게 되었다.
* 본 게시물은 36기 공창배 선수가 스키부 네이버 카페에 정리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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